[장편좀비소설] 들개들의 밤 - 8장 들개들 (5) > 무서운이야기talk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장편좀비소설] 들개들의 밤 - 8장 들개들 (5) > 무서운이야기talk


 

[장편좀비소설] 들개들의 밤 - 8장 들개들 (5)

페이지 정보

작성자 꼬돌이 댓글 0건 조회 1,428회 작성일 18-10-18 09:36

본문

이제 8장은 마지막 두 챕터가 남았습니다.

예정대로 금, 토 연재 됩니다. 


(5)




“얼른 가요! 얼른 출발해!”


아슬아슬하게 철수하는 군부대 트럭에 겨우 올라탄 수인의 보이지도 않는 운전석을 닦달했다. 감염된 정치인들과 기자들 그리고 민간인들이 트럭을 따라오고 있었다. 트럭 제일 뒷자리에 탄 군인 두 명이 사격을 가했으나 감염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엄청난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고 그들이 탔던 트럭도 요동치듯 움직였다.


“오, 맙소사! 말도 안 돼......”


수인은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상상도 못했던 폭발이 방어선에서 터졌다. 처음에는 방어선에서 뭔가가 터졌거나 아니면 오폭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속된 포격은 정확히 방어선을 노리고 있었다. 오폭이 아니었다.


“아직 사람들이 있을 텐데?”


수인과 같이 올라 탄 카메라기자는 넋 나간 듯 말하면서도 그 장면을 영상에 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폭음이 마무리 되었을 때 들리는 것은 그들을 따라오던, 천천히 멀어지는 감염자들의 목소리와 후폭풍 이후 몰아닥치는 바람소리뿐이었다. 트럭은 천천히 감염자들에게서 그리고 방어선에서 멀어졌다.


포격이 있기 전 방어선에서 빠져 나온 생존자들은 많지 않았다. 수인은 몸서리를 쳤다. 조금만 늦게 나왔더라면 그들도 꼼짝없이 희생자가 될 뻔 했다. 한편으로 수인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렸는지.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을 터였다.


“저거 범죄 아니에요?”


수인이 겨우겨우 말을 뗐다. 그러나 트럭 안의 그 누구도 수인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어린 군인 한 명이 철모에 머리를 박고 흐느꼈다. 수인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어린 군인을 쳐다보았다.




*****




전차와 보병전투차 그리고 군용 트럭들이 조용한 화정시 시내를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그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초라했다. 군인들이 지나가면서 화정시의 마지막 불빛들도 모조리 꺼졌다. 도로마저 조용했다. 간혹 들리는 총소리는 감염자와 생존자를 가리지 않았다. 군대는 남아 있는 모든 생존자들을 감염자로 취급했다. 군대의 소음을 듣고 밖으로 나온 모든 인간은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다. 군대가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단순했다. 일반적인 전쟁도 아니었고 몇 날에 걸쳐서 피난 명령을 내렸음에도 피난을 가지 않은 건 이미 감염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수인은 그런 군대의 결정에 기겁했다. 하지만 군용 트럭에 자신도 실려 있는 상태에서 군대의 행동을 막을 수 없었다.


“뭐해?”


카메라기자가 수인에게 말했다. 어두움 속에서 수인은 핸드폰에 뭔가를 꼼꼼히 입력하고 있었다.


“남겨야죠, 이건.”


수인은 두려움이 담겼으나 진지한 눈빛으로 카메라기자에게 속삭였다. 그녀의 대답에 카메라기자는 주변 눈치를 한 번 보고는 조심하라는 입모양을 남겼다. 그는 슬쩍 몸을 움직이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수인을 가려주었다. 그녀는 묵묵히 기록하고 기록했다. 언젠가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비상식의 시대가 지나가고 상식의 시대가 돌아오면 자신의 기록이 빛을 볼 것이라고, 수인은 생각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감염자 무리가 트럭을 따라왔다. 수인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저들을 두 눈에 담아 두었다.


“그르르르르.”


수인이 탄 트럭을 쫓아 온 건 규와 그의 무리였다. 규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여러 대의 트럭을 쳐다보았다. 그는 손을 휘적거렸지만 트럭에는 닿지 않았다. 수인과 규는 어둠 속에서 눈을 마주쳤지만 그것을 서로 알리는 없었다. 트럭에 탄 군인이 쏜 소총탄이 규의 가슴팍에 박혔다.


규는 천천히 자신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붉고 펄펄 뛰는 피 대신 진득진득하고 악취가 진동하며 물컹물컹하고 부들거리는 검붉은 덩어리가 가슴팍에서 삐져나왔다. 규는 고개를 들었다. 트럭은 완전히 멀어졌고 자신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규의 무리는 공습에서 살아남았다. 아니, 그들은 오히려 다른 무리와 달리 큰 피해 없이 화정시까지 도착했다. 규의 무리는 여전히 대규모 감염자 무리와는 다른 루트로 화정시에 들어왔다.


- 쾅! 쾅!


센트럴 뷰 클래식.


규를 화정시로 이끄는 등대 역할을 했던 거대한 빌딩에 1000KG급 순항 미사일 몇 발이 직격했다. 단순히 순항 미사일만이 터진 것은 아니었다. 순항 미사일이 직격하는 것에 맞추어 빌딩의 지하와 1층에서 군이 설치해둔 화약이 터졌다. 군은 감염자들의 진출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모든 것을 다하고 있었다.


화정시를 대표하던 빌딩, 거대한 센트럴 뷰 클래식은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서서히 대로 쪽으로 넘어져갔다.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이었다. 엄청난 후폭풍과 먼지들이 감염자들과 아직 살아 있던 생존자들을 덮쳤다. 또한 충격파는 센트럴 뷰 클래식 주변에 있던 다른 건물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먼지구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규의 무리는 먼지구름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울긋불긋한 핏줄이 올라와 시퍼랬던 규의 얼굴은 짙은 먼지로 인해 회색빛으로 창백해졌다. 그러나 규의 무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쪽을 향해 갔다.




*****




“확실히 속도가 빨라.”


드론을 통해 찍힌 영상을 보고 있던 동민의 표정이 어두웠다. 지휘소 천막에 모인 다른 간부들 역시 표정이 밝지 않았다. 화정시 중심가는 이미 불바다였다. 동이 트면서 참상은 더욱 명백히 드러났다. 낮은 빌딩들이 산재했던 광산시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가로 누운 센트럴 뷰 클래식의 처참한 모습에 모두 신음을 내뱉었다. 무너진 빌딩을 보면서 진언은 모골이 송연함을 느꼈다. 아버지와 저 주변에서 커피를 마셨던 기억이 생생했다.


“죽다 살아났군.”


동민이 슬쩍 진언의 표정을 보며 중얼댔다. 진언의 얼굴은 복잡미묘했다. 진언도 자신이 선택하긴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말 그대로 진언의 선택이 대대를 살렸다.


방어선에 있던 부대는 사실상 전멸했다. 감염자들의 진출 속도가 빠른 것도 그와 연관이 있었다. 방어선에서 최대한 힘을 뺀 다음 천천히 낮추면서 감염자들을 소모시키고 병력도 최대한 살리는 게 군의 목표였으나 방어선이 일순간에 무너지면서 모든 게 뒤틀렸다. 수천 명이 넘는 병력이 일순간 몰살됐다. 다른 방어선에서 화정시까지 병력을 끌어 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말 그대로의 무주공산. 공습이 지속되었지만 감염자들은 꾸준히 화정시로 밀려 들어왔다.


“남아 있는 민간인들이 있겠죠?”


소대장 중 하나가 말했으나 어느 하나 대답하는 이 없었다. 드론이 지속적으로 보낸 영상에서는 겨우 잔존한 병력 중 일부가 후퇴하면서 아무렇게나 총을 난사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들이 쏜 총에 누군가가 맞고는 픽 쓰러졌다. 그들이 생존자인지 아니면 감염자인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천벌 받을 거야, 우린.”


“천벌? 누구야! 누가 지금 그딴 소리를 했어!”


누군가가 자조적인 말을 내뱉자마자 진언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졌다. 평소 어지간한 말에는 격한 감정을 잘 보이지 않는 진언이었다. 더군다나 잘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진언의 성향 자체가 충분히 이런 말은 용인할 수 있으리라 여겼었다. 도두들 약간 의아한 기분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가 지금 누구를 위해 여기에 있는 거지? 여기에서 이렇게 고생을 하는 거지?”


진언은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가리켰다. 진언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거야!”


진언의 고성에 간부들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어색한 기분. 뭔가 진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진언의 몸을 빌어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그때 시몬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충성! 병장 김시몬입니다.”


지휘소에 들어선 시몬은 뭔가 모르게 어색한 간부들의 모습에 멈칫하고는 눈만 끔뻑거렸다. 뭔가 입을 잘못 놀리면 안 될 분위기였다. 간부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를 반긴 것은 진언이었다. 비로소 표정을 푼 진언이 시몬을 반겼다.


“잘 왔다. 너희들이 할 게 있다.”


진언은 시몬을 이끌고 천막 밖으로 나갔다.




*****




“지키라는 거야?”


병건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중대장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병건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적확하고 단순하게 이해하도록 명령 내리는 게 중대장 진언이었다. 그런데 맡아서 책임지라니, 너무나 모호한 명령이었다.


“그게......”


명령을 받은 시몬 역시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받은 명단을 만지작거렸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씨발. 책임지라니. 그럼 우리보고 죽으라는 말이야? 감염자들 언제 쳐들어올지도 모르는데 죽을 때까지 지키라고?”


“아냐. 그런, 그런 뉘앙스는, 아니었어.”


병건의 재촉에 시몬은 띄엄띄엄 대답했다. 윤건을 포함한 나머지 분대원들은 시몬의 저런 모습이 처음이었기에 익숙하지 않았다. 물론 그도 사람인지라 당황하거나 그런 적도 있었지만 이렇게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병건이 또 톡 쏘아댔다.


“그럼 도대체 뭐라는 건데?”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뭐?”


병건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살아야 한다와 책임지라는 말은 전혀 아귀가 맞지 않아보였다. 명단과 책임. 불현듯 병건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설마 그런 건 아니지?”


병건의 의심쩍은 눈동자를 본 시몬이 답했다.


“아냐. 중대장이 악마도 아니고.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그래. 평상시라면 좋은 사람이지. 근데 지금이 평상시가 아니라서 문제지.”


병건은 다른 분대원들을 훑어봤다. 중대장의 명령을 따라 여기까지 살아 남은 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럴 수 있을지 병건은 전혀 장담할 수 없었다.




*****




수진은 공기를 찢는 굉음에 잠에서 깼다. 굉음은 연달아 이어졌다. 그녀에 이어 태수와 하영도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이거 무슨 소리야?”


“전투기 아니에요? 전투기?”


아직 새벽이었다. 성당에 구속된 사람들은 귀청이 터져라 울려 퍼지는 굉음에 기겁했다. 전투기나 헬기들이 쉴 새 없이 북쪽으로 날아가긴 했지만 이 이른 새벽부터 공습을 나간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며칠 동안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빈도도 줄어들던 터였다. 수진은 본능적으로 이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군에서 나누어준 담요를 걷고 일어나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오....... 맙소사.”


수진은 황급히 창문을 열었다. 창살 사이로 멀리 화정시 시내가 눈에 들어왔다. 수진은 이 시간에 화정시 시내가 눈에 익는다는 것에 어색함을 느꼈다. 그녀는 곧 밝게 빛나는 화정시 중심가의 이유가 바로 공습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진은 급히 군인들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누군가와 무전을 나누고 있는 군인에게 다가가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저거 어떻게 된 거예요!”


아마 여기를 경비하는 군인들 중 최선임이겠지만 그의 얼굴은 앳되어보였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군인의 이름과 계급을 살폈다. ‘김시몬’, ‘병장’. 김시몬이란 이름을 가진 병장은 그녀의 등장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무전기에서는 여전히 누군가가 뭐라뭐라 말을 뱉고 있었다.


“무전기, 무전기 나 줘요! 내가 이야기 할게! 여기 상황 내가 말할게요!”


“아주머니 이러시면 안 됩니다!”


다른 군인들이 다가와 그녀를 제지했다. 태수와 하영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수진을 보호하기 위해 혹은 수진처럼 행동하기 위해 군인들에게 다가갔으나 그들은 곧 자신들을 겨눈 총구에 한발짝 물러서고 말았다.


“두려워하시는 거 다 압니다.”


김시몬이라는 이름의 병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꽤나 덩치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저희가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지금 여기는 안전하다는 겁니다. 저희가 그래서 여기 있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 수진을 포함한 사람들은 어설픈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 앞의 총기가 두려워 사람들은 앞으로 나설 수 없었다. 그런 그들 앞에 시몬이 명단과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앞으로 나섰다.




*****




“형부! 이제 우리도 정말 가야 해요!”


애타는 목소리가 텐트 안에서 커졌다. 유진이었다. 모두가 모여 앉은 좁은 텐트에서 유진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경수를 보고 있었다. 처음 규성의 메시지가 왔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 하던 유진이었다. 그러나 새벽 규성에게 두 번째 메시지가 왔을 때 유진은 선택해야 했다.


언니였다.


자신의 친언니.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


그러나 유진은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언니의 소재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트릴 수 없었다. 그들은 심지어 가족도 아니었다. 잔뜩 굳은 얼굴로 경수가 말했다.


“언니가 아직.”


“소재조차 모르잖아요! 일단 우리가 살아야죠. 우리가 살아야 언니도 찾을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갈 거면 먼저 가.”


“형부!”


윤서와 윤영, 수민과 성미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과 뜻을 같이 해서 남은 것이었기에 그들의 선택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윤영은 슬그머니 현규를 쳐다보았다. 잔뜩 굳어 있는 모습이 윤영은 현규의 손을 잡았다.


“형이랑 잠깐 나가자.”


현규는 윤영의 손을 잡고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곧 흐느끼는 소리와 작은 떨림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윤영은 가만히 현규를 바라봤다. 크고 맑은 눈동자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땅으로 떨어졌다.


윤영은 현규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윤영은 조심스럽게 현규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




윤영은 경수를 도와 텐트를 철거했다. 텐트가 다 정리될 때까지 경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짐을 정리하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검문소 안쪽에 남아 있던 대다수의 민간인들도 텐트를 걷고 짐을 정리했다. 방송국에서 나온 TV 기자들과 개인 방송 BJ로 보이는 사람들이 열심히 그 모습을 생중계했다.


“언니.”


윤서와 수민이 조심스럽게 유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유진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바람이 살짝 불어왔고 세 사람의 머리가 잠깐 흩날렸다. 피비린내도 화약향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바람이었다.


“아휴, 진짜.”


유진은 억지로 눈물을 닦아냈다. 하지만 그럴수록 눈물이 쏟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수진이 살아있을 거라고 안전한 곳에 있을 거라고. 군인들과 함께 있을 테니 어쩌면 그건 믿을만한 도박이기도 했다. 그렇게 유진은 경수를 설득했고 자기 스스로도 납득하려 했다.


“미안. 나 때문에 늦어지네요.”


“아, 아니에요. 언니.”


쪼그려 앉아 있던 유진은 눈물을 닦아내고는 몸을 일으켰다. 유진은 현규를 불렀다. 경수와 윤영이 짐 정리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현규가 서먹서먹한 발걸음으로 유진에게 다가왔다. 유진은 순간 그 모습에서 한동안 잊고 있던 이름이 떠올랐다.


사림. 그 모습과 현규의 모습이 갑작스럽게 겹쳐졌다. 지금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지르고 있는 걸까. 유진은 손이 덜덜 떨렸다. 누구한테 용서를 구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운좋게 살아남는다면 평생 그 의문을 가지고 갈 것이다. 유진은 그럼에도 지금 이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유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윤서와 수민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유진의 눈물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




규는 청곡산의 능선을 따라갔다. 여전히 규의 무리는 일반적인 감염자들과 다른 루트를 택했다. 청곡산은 화정시의 동쪽에 위치한 산으로 산줄기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청곡산의 끝은 농성동이었다. 본능일까. 아니면 의식적 행동일까? 알 수 없었다. 다만 규의 무리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은 분명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무리가 점점 불어나고 있음에도 군에서는 제대로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으헉! 으허헉!”


감염자들에게 걸린, 운 나쁜 생존자 한 명이 고통인지 쾌락인지 모를 비명을 질러댔다. 부들부들 떨던 생존자는 곧 절명했다. 몇 번 더 입질을 하던 감염자는 생존자의 숨이 끊기자 아무런 미련 없이 일어났다. 두터운 몸에 5월에 어울리지 않는 얇은 패딩. 그는 광산시의 농가에 숨어 있던 생존자였었다.


그가 걸음을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 소생이 시작되었다. 청곡산에 숨어들었던 운 나쁜 생존자는 또 다른 삶을 맞이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이 뒤틀리듯 발작을 일으키던 생존자의 입에서 검붉은 진액이 터져 나왔다.


몇 번의 떨림이 더 이어진 뒤 생존자는 차가운 흙바닥을 짚었다. 생존자 아니, 이제는 또 다른 감염자가 된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곧 감염자는 규의 무리를 뒤따랐다.


“그르르르르......”


얼마간을 더 능선을 따라가던 규는 곧 걸음을 멈췄다. 탁한 그의 눈동자에 농성동 성당의 모습이 들어왔다. 동시에 그 아래로 바글바글한 인간의 무리들이 보였다. 너무나 많은 인간들의 목소리가 규를 자극했다. 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듯 좁은 공간 안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곧 규의 무리는 둘로 나뉘었다. 대다수의 무리는 산 아래로 걸음을 옮겼고 규를 포함한 또 다른 무리가 농성동 성당으로 향했다.


추천0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공지사항talk

  • 게시물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접속자집계

오늘
85
어제
114
최대
622
전체
20,795

그누보드5
Copyright © 소유하신 도메인. All rights reserved.